[키링] '글쎄요'라는 대답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서유리메세지_최종_진짜최종_이걸로’ 대리님 집에 잘도착했어요! 감사합니다 :) 대리님도 잘 도착하셨나요? 상투적이기 그지없는 메세지, 두 문장을 작성하기 위해 얼마나 고된 노력을 하였던가, 스스로의 어깨를 토닥이며 잘했다, 나쁘지 않은 답장이었다고 칭찬에 인색하지 않았다. 그리고 정훈의 답장이 기다려졌다. ‘답장이 오면 어떻게 또 답장을 해야할까? 뭐라고...

농담처럼 던진 정훈의 말에 한대 맞은 주홍은 풀이 죽은 강아지처럼 포크로 피자를 휘적거렸다. 그런 주홍을 바라보는 정훈은 ‘이 새끼 진심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늘 주홍은 가벼운 모습이었지만, 항상 진중했고 가볍지 않은 관계를 추구했다. 그래서 쉽게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 없었다. 그런 주홍의 마음에 담긴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지이이이잉 08. ...

정훈은 주홍을 노려보며, 앞에 놓여진 스타우트를 한모금 넘겼다. 달콤한 듯한 커피의 향이 코끝을 스치고 끝으로 맥주의 씁쓸한 맛이 입안에 남아있었다. “그래서, 최지윤은 아직도 연락이 없어?” 07. ‘최지윤’이라는 단어에 정훈의 입으로 가던 맥주잔이 멈칫했다. 하지만 최종목적지인 입가에 도착했고, 맥주잔에 있는 맥주는 점점 줄어들었다. “스타우트 한잔 더...

그래서 잘 하지 않던 메세지를 유리에게 남겼다. 퇴근 잘 했어요? 용기내어 카톡했던 정훈의 마음과 무색하게 답변이 돌아오지 않았다. 퇴근하는 차안에서 자신도 모르게 계속 휴대폰 액정을 주시하며, ‘서유리’라는 이름이 뜨는 건 아닌지를 확인하고 있었다. 집에 도착해서도 휴대폰은 울리지 않았다. 테이블위에 휴대폰을 놓아두고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냉장고에서 맥...

동이를 향해 한쪽 무릎을 굽히고 앉아서 동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고 있는 정훈을 바라보며 유리도 동이를 향해 살짝 앉았다. 어색하고, 불편하던 분위기는 동이의 부름에 달아나 버렸고, 유리는 장난끼 섞인 목소리로 정훈에게 이야기했다. “원래는 잘 안 짖는데, 대리님 경계하나봐요.” “제가 무섭게 생겼나봐요. 동이한테” 그렇게 말하고는 정훈은 유리를 바라보...

무책임하고 부주의하기 그지없었던 하루. 직장에서의 서유리는 얼마되지 않는 연봉이라는 액수에 묶여 그 액수에 맞는 역할을 수행해야했다. 자본주의라 칭하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착실한 직장인의 모습을 갖춰야 함을 잘 알고있음에도 오늘의 서유리는 다른 세상을 살고있는 모습이었다. 거울에 비친 유리는 ‘정말 모르겠어?’ 라며 반문했지만 의자에 앉아있는 유리는 아무...

“그래요. 너무 무리하지말고 수고해요.” 많은 망설임 속의 짤막한 말 한마디. 그렇게 말을 마치고 정훈은 발걸음을 옮겼다. 정훈의 뒷모습이 유리에게서 점점 멀어져 갔다. 늘 이렇게 시선을 마주하고 잠깐의 대화를 나누고 나면 유리의 시야에는 정훈의 뒷모습만이 남아있는다. 다시금 느껴지는 거리감. 인지하지 못할때 등장해서 놀라게 하고는 금방 다시 사라져버린다....

인식하지 못했던 어느 순간부터,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인식하게 되면서 더 자주, 눈이 마주친다는 것이 느꼈다. 언제부터일까? 이 사람과 눈을 맞추게 되었던 시작이. 유리의 책상에서 멀어지는 정훈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흐트러짐 없는 걸음걸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하지만 묵직한 발걸음. 그의 책상에 도착해 자리를 정리하고 반듯하게 앉았다. 02 ‘후, ...

창밖은 흐릿하다. 뿌옇게 미세먼지가 하늘을 덮고 있고, 건물들 사이에서 새들을 날아다닌다. 새들은 발 디딜 곳을 찾고 있다. 아슬아슬한 좁은 창문 틈. 새들이 잠깐의 안식을 구할 곳이라곤 위태롭기 그지없는 창문 틈이다. 그곳에 앉아서 잠시 휴식을 가진다. 휴식은 잠깐이고 이내 다시 날개를 펼쳐 어딘가로 날아간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쉬지 않고 날개짓을 한다....